편안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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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담항설(街談巷說)
  2. 화원에 꽃이 핀다 - 윤동주
  3. 꿈이나 되어 당신을 찾을까 - 노자영
  4. 봄 - 권 환 1

가담항설(街談巷說)

[고사성어]만찬

가담항설(街談巷說
 -거리街, 말씀談, 거리巷, 말씀說 

가담항설 :
 1. 길거리에 떠도는 이야기
 2. 세상 사람들 사이의 떠도는 이야기나 소문  


거리街와 거리巷은 똑같이 길거리란 의미를 담고 있지만 거리街는 도시의 번화가, 巷은 골목을 뜻합니다.
결국 길거리에 떠도는 얘기들이란 의미죠. 이 사자성어는 중국의 역사가 반고가 쓴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에서 소설(小說)에 대한 설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小說者流 蓋出於稗官 街談巷說 道聽塗說之所造也'
소설은 패관으로부터 나왔으며 가담항설과 도청도설로 만들어졌다.(두산백과)

 옛 임금들은 패관(稗官) 이라는 관리들을 통해 민간의 풍속이나 정사를 살피려고 가담항설을 모아 기록하게 하였답니다.  가담항설이나 도청도설을 모아 만들어진 소설은, 패관들이 소문과 풍설을 주제로 하여 자기 나름의 창의와 윤색을 덧붙여 설화문학 형태로 쓴 패관문학이 되었답니다.

비슷한 말로 가설항담(街說巷談)· 가담항어(街談巷語)· 가담항의(街談巷議) 등이 있구요, 
도청도설 (道聽塗說)도 같은 의미임을 아시겠죠?

화원에 꽃이 핀다 - 윤동주

[시시(詩時)]한 인생

화원에 꽃이 핀다.      

 

                                                                 - 윤동주

 

 

개나리, 진달래, 앉은뱅이, 라일락, 민들레, 찔레, 복사, 들장미, 해당화, 모라, 릴리, 창포, 튜울립, 카네이션, 봉선화, 백일홍, 채송화, 다알리아, 해바라기,

코스모스 - 코스모스가 홀홀히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여기에 푸른 하늘이 높아지고 빨간 노란 단풍이 꽃에 못지않게 가지마다 물들었

다가 귀또리 울음이 끊어짐과 함께 단풍의 세계가 무너지고 그 위에 하룻밤 사이에 소복이 흰 눈이 내려 쌓이고 화로에는 빨간 숯불이 피어오르고 많은

이야기와 많은 일이 이 화롯가에서 이루어집니다.

 

독자제현! 여러분은 이 글이 씌어지는 때를 독특한 계절로 짐작해서는 아니 됩니다.

아니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철로나 상정하셔도 무방합니다. 사실 1년 내내 봄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 이 화원에는 사철내 봄이 청춘들과 함께 싱싱하게 등대하여 있다고 과분한 자기선전일까요.

하나의 꽃밭이 이루어지도록 손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생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딴은 얼마의 단어를 모아 이 졸문(拙文)을 지적거리는 데도 내 머리는 그렇게 명철한 것은 못됩니다.

한해 동안을 내 두뇌로써가 아니라 몸으로써 일일이 헤아려 세포 사이마다 간직해 두어서야 몇 줄의 글이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일 수는 없습니다.

봄바람의 고민에 찌들고 녹음의 권태에 시들고, 가을 하늘 감상에 울고, 노변(爐邊)의 사색에 졸다가 이 몇 줄의 글과 나의 화원과 함께 나의 1년은 이루어집니다.

 

시간을 먹는다는 (이 말의 의의와 이 말의 묘미는 칠판 앞에 서 보신 분과 칠판 밑에 앉아보신 분은 누구나 아실 것입니다) 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루를 휴강한다는 것보다(하긴 슬그머니 까먹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다못 한 시간, 숙제를 못해 왔다든가 따분하고 졸리고 한 때, 한 시간의 휴강은 진실로 살로

가는 것이어서, 만일 교수가 불편하여서 못 나오셨다고 하더라도 미처 우리들의 예의를 갖출 사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들의 망발과 시간의 낭비라고 속단하셔선 아니 됩니다.

여기에 화원이 있습니다.

한 포기 푸른 풀과 한 떨기의 붉은 꽃과 함께 웃음이 있습니다.

노트장을 적시는 것보다 한우충동(汗牛充棟 : 짐으로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쌓으면 대들보에까지 미친다는 뜻으로 책이 매우 많음을 이르는 말)에 묻혀 글줄과

씨름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진리를 탐구할 수 있을는지, 보다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할 수 있을는지, 보다 더 효과적인 성과가 있을지를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나는 이 귀한 시간을 슬그머니 동무들을 떠나서 단 혼자 화원을 거닐 수 있습니다.

단 혼자 꽃들과 풀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참말 나는 온정으로 이들을 대할 수 있고 그들은 나를 웃음으로 맞아 줍니다.

그 웃음을 눈물로 대한다는 것은 나의 감상일까요.

고독, 정숙도 확실히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여기에도 또 서로 마음을 주는 동무가 있는 것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화원 속에 모인 동무들 중에, 집에 학비를  청구하는 편지를 쓰는 날 저녁이면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 겨우 몇 줄 써 보낸다는 A군, 기뻐해야 할 서류(통칭월급

봉투)를 받아든 손이 떨린다는 B군, 사랑을 위하여서는 밥맛을 잃고 잠을 잊어버린다는 C군, 사상적 당착에 자살을 기약한다는 D군...

나는 이 여러 동무들의 갸륵한 심정을 내 것인 것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세계관, 인생관, 이런 좀 더 큰 문제보다 바람과 구름과 햇빛과 나무와 우정, 이런 것들에 더 많이 괴로워해 왔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 말이 나의 역설이나 나 자신을 흐리우는 데 지날 뿐일까요. 일반은 현대 하생도덕이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스승을 섬길 줄을 모른다고들 합니다.

옳은 말씀들입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나 이 결함을 괴로워하는 우리들 어깨에 지워 광야로 내쫓아 버려야 하나요.

우리들의 아픈 데를 알아주는 스승, 우리들의 생채기를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세계가 있다면 박탈된 도덕일지언정 기울여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겠습니다.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면 손목을 붙잡고 목놓아 울겠습니다.

 

세상은 해를 거듭 포성에 떠들썩하건만 극히 조용한 가운데 우리들 동산에서 서로 융합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종전의 X가 있는 것은 시세의 역효과일까요.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코스모스가 홀홀히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단풍의 세계가 있고 - 履霜而堅冰至("리상이견빙지") - 서리를 밟거든 얼음이 굳어질 것을 각오하라가 아니라, 우리는 서릿발에 끼친 낙엽을 밟으면서 멀리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노변(爐邊)에서 많은 일이 이뤄질 것입니다.

 

저작 : 연대 미상 (연전 시절의 작품)

발표 : 1948 (32...3주기  )11, 12월호 <신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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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나 되어 당신을 찾을까 - 노자영

[시시(詩時)]한 인생
꿈이나 되어 당신을 찾을까
 
                                                                           노자영

지금은 31일 아침!
금잔화 꽃 떨기에 흰 이슬이 내리고 하늘빛 법의(法衣)를 입은 소나무에
매미가 울어요. 그리고 처녀의 하트같은 빨간 햇빛이 나무 사이에 비치어
가지에 맺힌 이슬은 모두 금구슬이 되었읍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일찌기 약수터에 갔었고 오는 길에 반석위에서 책을 보
았다오. 푸른실 같은 뽀얀 안개가 산곡에 자욱하여 그야말로 무슨 신비의
낙원 같더이다. 거룩하신 우리 님이 행여나 그곳에 계실까하여, 산곡을 찾
아 올라갔더니 그 곳에도 당신은 계시지 않고요. 정말 산새들이 이슬맺힌
산 개나리를 보고 뭐라고 속삭이더이다.

어제 저녁에는 정말 거룩한 S 寺[사]를 보았읍니다. 많은 소나무는 그의
검은 머리를 모두 풀어 헤치고요, 두 손을 모아 하늘 아래 묵례를 하더이
다. 그 사이에 푸른별이 은실을 가지고 땅 위로 내려오고 개똥벌레 몇 마리
가 파란 등을 가지고 개천가를 찾아 다니고요. 누구를 찾는지는 모르나……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미풍의 노래가 하늘의 별과 속삭입니다. 이때에 S
寺[사]는 오로지 하나의 거룩한 시(詩)의 처녀가 되어 대지에 자리를 펴고
고요한 꿈을 지켰지요. 나도 이때에 꿈이 되어 당신 계신 동산을 찾아 갔다
오.

어제밤 내 몸은 꿈이 되어서 당신 계신곳을 찾아 갔더니 당신은 아는지 모
르는지 잠만 잤었지요. 그래서 나는 할수없이 별이되어 당신 창에 새벽까지
비췄다오. 그리고 미풍이 되어서 당신 이마에 밤새도록 붙어 있었다오.
사진은 아니 보내신 다고요. 여보, 흉해도 내 사랑이요, 예뻐도 나의 풀이
요, 미워도 나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불철저한 소리가 나는 듣기 싫습니
다. 당신은 언제던지 진실성을 가진 깨달음이 있는 여성이 되어서 하늘의
별빛 아래 곧은 마음을 매여 두세요.

어제 은경이가 왔다가 금일 갔었다고요. 그러나 나는 만나지 않았읍니다.
그러면 내일 다시……


─ 1939년, 서간집 「나의 花環[화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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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권 환

[시시(詩時)]한 인생

 

                                                                                      권 환


 봄은 과연 옛날과 다름없이 청의(靑衣)를 입고 동쪽에서 수레를 타고 왔습
니다. 그러나 물론 옛날과 같이 커다란 도포(道袍)에 행전을 치고 손엔 백
우선(白羽扇)을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뒷허리에 파초 잎를 부친듯한 산뜻
한 연미복(燕尾服)에 번질거리는 실크해트를 쓰고 하 ─ 얀 장갑을 낀 한
손에는 스틱을 들으며 한 손에는 망원경을 들었습니다. 또 그의 탄 수레 역
시 앞뒤로 메는 남여(藍與)같은 것이 아니고 전(全) 경금속제(輕金屬製)인
차체의 양편에는 잠자리 같은 단엽(單葉) 은색 날개, 그 밑에는 튼튼한 고
무타이어가 달렸으며 앞에는 공육해(空陸海) 어디든지 다닐 수 있게 한 전
기기관이 장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봄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왔습니다. 나팔 소리도 군악 소리
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그는 원래 어떠한 계획과 목
적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오. 누구의 명령을 받아서 온것도 더구나 아니었
습니다. 또 봄 자신은 본시부터 일력(日曆)도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그는 광막한 대공(大空)에서 무한한 대도(大道)를 탄 수레가 가는대로 올
따름입니다.
뿐만 아니라 봄 자신은 이 땅에 와서 그저 의례(依例)히 올 시간 올 장소
에 왔다는 태도로 그의 심경과 표정은 극히 평범하였습니다. 다만 명랑하고
태연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봄을 맞는 이들은 오랫동안 봄을 고대하던 차일 뿐아니라
또 고대는 하면서 마중의 차림은 충분치 못한 그들은 기쁨을 못이기는 한편
극히 당황하여 여기저기서 수선거리며 속살거리어 야단이었습니다.
그 중에도 종달새와 제비가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초조하였습니다. 겨울
동안 응달진 산골 썩은 나뭇잎 속에서 올올 떨고 있다가 기다리던 봄이 오
매 그는 하루바삐 금가루가 반짝이는 따뜻한 태양 밑 바다같이 푸른 대공에
서 마음껏 날아보려고 어수선한 날개의 깃을 허둥지둥 빗질하고 웅크렸던
팔다리에 힘을 주려고 정말체조(丁抹體操)를 하랴 노래 부를 성대를 다듬느
라고 발성연습을 하랴 야단이었습니다. 그는 벌써 화려한 봄 하늘에 마음껏
노래부를 유쾌한 그날을 생각하고 미리 가슴이 우던거리며 어깨가 들썩거렸
습니다.

 또 제비는 가을한테 쫒겨 오랫동안 바다 저편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봄
왔다는 소식을 들으매 하루바삐 정다운 고향을 찾으려고 갖은 힘을 다하여
날개를 지어가며 주야겸행(晝夜兼行)으로 바다를 건너오느라고 야단이었습
니다.


봄은 일미평방 (一米平方)도 안되는 내 낡은 책상 위에서 빼지 않고 왔습니
다. 오랫동안 호박(琥珀)처럼 얼어붙어 새까만 내 책상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
던 내 시도 봄을 맞이하여 한 덩이 두 덩이 녹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봄의 혜
택을 흡족히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얼마 안 지내 종달새와 함께 따뜻한
봄의 대공(大空)에서 재잘거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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