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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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회상(回想) - 김우진
  2. 차라리 괴물을 취하리라 - 신채호
  3. 자부심 유감 - 김남천
  4. 뒷산 - 권 환

회상(回想) - 김우진

[시시(詩時)]한 인생

回想[회상]

                                         김우진

누른 입 날니고
가을 바람 불 때,
뜬 기럭이
내 생각 西天[서천]에 傳[전]하겟늬 ─

 

그때 暴風[폭풍]과 물결 소리 집을 흔들고
白晝[백주] 찬길 바닥 구루마 ˙ ˙ ˙ 來往[내왕]할 때,
침침히 어두운 외로온 抱擁[포옹] 속
瞬時[순시]의 그 두 몸 맑엇다,
그때의 그 품, 이제 내의 마암을 끼여안는다.

 

‘붓구렵다’난 얼골
내 팔노 끼여안엇스나,
두 마암의 眞實[진실]한 接觸[접촉]
虛僞[허위] 안임을 生覺[생각]하느냐,
그 때의 그 마암, 이제 내의 가삼에 가득하다.

 

肉體[육체]나 心靈[심령]이나
絶滅[절멸] 못하지 ─
願[원]하난 마암 끈치지 안으며
貴[귀]한 肉體[육체] 썩지 안으면

 

그때 貴重[귀중]한 그 우슴
비록 霎時間[삽시간]이나, 그 우슴
이제 내의 靈[영]을 빗나게 한다.

 

아 거기 잇서라! 내의 忠實[충실]한 記憶[기억]
이날 밤 이불 속에 그 얼골의 幻影[환영]
이 瞬間[순간]대로 살아지지 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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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괴물을 취하리라 - 신채호

[시시(詩時)]한 인생

차라리 괴물을 취하리라

                                                           신채호


어떤 선사가 명종할 때 제자를 불러 가로되,
“누워 죽은 사람은 있지만, 앉아 죽은 사람도 있느냐?”
“있습니다.”
“앉아 죽은 사람은 있지만, 서서 죽은 사람도 있느냐?”
“있습니다.”
“바로 서서 죽은 사람은 있으려니와 거꾸로 서서 죽은 사람도 있느냐?”
“없습니다. 인류가 생긴 지가 몇 만 년인지 모르지만 거꾸로 서서 죽은
사람이 있단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선사가 이에 머리를 땅에 박고 거꾸로 서서 죽으니라.


이는 죽을 때까지도 남이 하는 노릇을 안 하는 괴물이라. 괴물은 괴물이
될지언정 노예는 아니 된다. 하도 뇌동부화(雷同附和)를 좋아하는 사회니
괴물이라도 보았으면 하노라.
관악산 중에 털똥 누는 강감찬의 후신이 괴물이 아니냐?
상투 위에 치포관을 쓰고 중국으로 선교하려고 온 자가 또한 괴물이 아니냐?
이는 군함·대포·부자유·불평등·생활곤란·경제압박 모든 목하(目下)의 현실을

대적하지 못하여, 도피하여 이상적 무릉도원의 생활을 찾음이니 무슨 괴물이 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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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 유감 - 김남천

[시시(詩時)]한 인생
자부심 유감

김남천


지금과 같은 시대에 있어서 자기의 하는 문화 사업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
지는 것은 필용한 일일 것이다. 문화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에 대하여 충분한
대접과 보수를 약속할 줄 모르는 옹졸스러운 실리 사회에 살면서, 진리의
유지와 보육(保育)을 위하여 힘쓰는 이들이 자기의 하는 일에 자신과 자부
심을 갖는다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과 자부심이 모든 세속적 간난(艱難)을 극복하여 진리에
의 순수한 사색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데 필용한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발
현됨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도를 넘어 공연한 독선주의를 낳음에 이른다면
그것은 실로 유감된 결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에 독선주의가 학문이나 문화의 전문 분화의 극단화에 결과로서 제분
야 간의 무교섭, 학문과 생활과의 유리를 낳는 정도라면, 문화의 종합적 연
구에 따라서 시정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나 이것이 그대로 발호(跋扈)
하여 하나의 관념적 사디즘의 경우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고칠 수 없는 고질
로 화(化)하여 버릴 것이다. 자기의 하는 일이 전(全)문화 체계 위에서 어
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반성치 아니하고 자기의 분야와 관념만을
독존적으로 자부하여 타인의 지식, 타인의 업적, 타인의 작품을 정당히 받
아들일 심리적 여유를 가진 이라야 자기의 작품을 사랑할 줄 아는 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질이 상부(相副)치 않는 추상적 사디즘은 자기의 지
식과 관념까지를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마조히스트의 자조와 다를 것이 없
을 것이다. 학문과 예술의 길이 항항 자기 긍정과 자기 비판의 균현된 정신
을 요구함은 이 때문이다.


(『동아일보』, 1939년 6월 25일,‘호초담(胡椒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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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 - 권 환

[시시(詩時)]한 인생

뒷산
                           

                 권  환


거꾸로 박힌 심장형

 

누런 밤나무 잎이
시냇물 덮어 흐르는

 

뻐꾹새 우는소리
여기저기 들리는

 

내 고향의 뒷산
나는 온 하루 밤을 자지 못했다
그 산 이름을 생각해 내려고
깜박 잊어버린 그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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