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계용묵
가만 보면 자랑하려는 마음처럼 무서운 마음은 없는 것 같다.
자기를 자랑하려고 내세우려면 우선 자기
이외의 세력은 꺾어내려야 자기의
자랑이 되니까, 그런 마음의 눈앞에는 물도 불도 보이지를 않게 된다.
사람을 욕하고 해하는 것도 결국은 자랑에서 나오는 마음이요, 사람에게 인자
하고 선을 베푸는 것도
기실은 자랑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심지어는 술 한 잔
마시는 데도 자랑이 있다. 술을 그 도가 지나치면 후에 미칠 고통을 뻐언히
내
다보면서도 남보다 잘한다는 게 자랑 같아서 컵에다 늠실늠실하게 채워 놓은
잔을 태연하게 단숨에 들이키는 우둔을 감행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고루 거각
에서 영화를 꿈꾸는 것도 자랑에서 나오는 마음이요, 일간 초옥에서 양식을 고
집하는 것도 자랑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악이나 선이나 교만이나 겸손이나를
물론하고 그 어느 것이 자기를 높이려는 자랑의 마음에서 작용 안 됨이 없다.
그
사람의 성격 여하에 따라 적극적이요 소극적인 면이 있을 뿐인 것이요, 선과
악으로 갈리는 면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교양
정도에 따라 자랑이
우둔해짐과 영리해지는 차가 있을 따름이지, 사람이 산다는 일에 있어 그 모든
것이 저를 위한 자랑 아님이
없다.
이것은 사람들 저 스스로도 모르는 가운데 공인이 되어, 서로들 보통으로 알고
제각기 이런 자랑으로도 살아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 참 웃음이 난다.
남보다 높은 데 올라서서 남을 내려다보는 게 왜 그리 좋은 것일까? 이렇게들
저마다 높은 데 올라
앉아서 내려다만 보자니, 그 밑에서 이 자랑을 만족시켜 줄
존재가 있어야 아니 하나.이들 내려다보는 존재의 만족을 위해 몇 사람쯤은 그
높은 존재 밑에서 이들을 우러러보는 못난 존재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높이 앉는 것을 자랑으로 알면서, 제 목숨을 제 손으로
끊는 그 소위 자살
행위로 높이 앉으려는 자랑은, 자랑 가운데서도 참 무서운 자랑이다. 사람에게서
이 모든 자랑의 행동을 빼
버린다면 사람의 행동은 그 즉시도 정지되고 말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자랑이라는 마음은 바로 그것이 사람의 생명인지도 모를
일이다.(1956년)
〔수록단행본〕*『노인과
닭』(범우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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