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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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시 - 박용철
  2. 자랑 - 계용묵
  3. 오늘 문득 - 강경애
  4. 떠나가는 배 - 박용철

다시 - 박용철

[시시(詩時)]한 인생

다시


                                  박용철


돌돌거리는 물조차 말라붙은

험상한 바위틈에 앉아

흐린 하늘을 바라보노라

벗은 가지를 보노라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노라


헛되다는 말도 헛되어라


어린 마음아

고운 마음아

너도

이같이 말라붙고

옹그라져

이 험한 바위가 되렴아


너를 차마 사르다니

무언 다시 안 사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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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 계용묵

[시시(詩時)]한 인생

    자랑
                                                                                           계용묵

 

가만 보면 자랑하려는 마음처럼 무서운 마음은 없는 것 같다.
자기를 자랑하려고 내세우려면 우선 자기 이외의 세력은 꺾어내려야 자기의
자랑이 되니까, 그런 마음의 눈앞에는 물도 불도 보이지를 않게 된다.

 

사람을 욕하고 해하는 것도 결국은 자랑에서 나오는 마음이요, 사람에게 인자
하고 선을 베푸는 것도 기실은 자랑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심지어는 술 한 잔
마시는 데도 자랑이 있다. 술을 그 도가 지나치면 후에 미칠 고통을 뻐언히 내
다보면서도 남보다 잘한다는 게 자랑 같아서 컵에다 늠실늠실하게 채워 놓은
잔을 태연하게 단숨에 들이키는 우둔을 감행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고루 거각
에서 영화를 꿈꾸는 것도 자랑에서 나오는 마음이요, 일간 초옥에서 양식을 고
집하는 것도 자랑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악이나 선이나 교만이나 겸손이나를
물론하고 그 어느 것이 자기를 높이려는 자랑의 마음에서 작용 안 됨이 없다.
그 사람의 성격 여하에 따라 적극적이요 소극적인 면이 있을 뿐인 것이요, 선과
악으로 갈리는 면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교양 정도에 따라 자랑이
우둔해짐과 영리해지는 차가 있을 따름이지, 사람이 산다는 일에 있어 그 모든
것이 저를 위한 자랑 아님이 없다.
이것은 사람들 저 스스로도 모르는 가운데 공인이 되어, 서로들 보통으로 알고
제각기 이런 자랑으로도 살아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면 참 웃음이 난다.

 

남보다 높은 데 올라서서 남을 내려다보는 게 왜 그리 좋은 것일까? 이렇게들
저마다 높은 데 올라 앉아서 내려다만 보자니, 그 밑에서 이 자랑을 만족시켜 줄
존재가 있어야 아니 하나.이들 내려다보는 존재의 만족을 위해 몇 사람쯤은 그
높은 존재 밑에서 이들을 우러러보는 못난 존재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높이 앉는 것을 자랑으로 알면서, 제 목숨을 제 손으로 끊는 그 소위 자살
행위로 높이 앉으려는 자랑은, 자랑 가운데서도 참 무서운 자랑이다. 사람에게서
이 모든 자랑의 행동을 빼 버린다면 사람의 행동은 그 즉시도 정지되고 말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자랑이라는 마음은 바로 그것이 사람의 생명인지도 모를 일이다.(1956년)

 

                                                           〔수록단행본〕*『노인과 닭』(범우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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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 강경애

[시시(詩時)]한 인생

오늘 문득


강경애


가을이 오면은
내 고향 그리워
이 마음 단풍잋 같이
빨개집니다.


오늘 문득 일어나는 생각에 이런 노래를 적어보았지요.


출처:신가정 (19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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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배 - 박용철

[시시(詩時)]한 인생

떠나가는 배


                                       박용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헤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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