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오후

'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97건

  1. 꿈이면은? - 홍사용
  2. 계절의 표정 - 이육사
  3. 애서취미(愛書趣味) - 오장환
  4. 생명의 한 토막 - 심훈

꿈이면은? - 홍사용

[시시(詩時)]한 인생

꿈이면은?

                                        홍사용


꿈이면은 이러한가, 인생이 꿈이라니

사랑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허튼 주정(酒酊)

아니라, 부숴 버리자,

종이로 만든 그까짓 화환(花環)

지껄이지 마라, 정 모르는 지어미야

날더러 안존(安尊)치 못하다고?

귀밑머리 풀으기 전(前) 나는

그래도 순실(純實) 하였었노라


이 나라의 좋은 것은, 모두 아가 것이라고

내가 어릴 옛날에 어머니께서

어머니 눈이 끔적하실 때, 나의 입은 벙긋벙긋

어렴풋이 잠에 속으며, 그래도 좋아서

모든 세상이 이러한 줄 알고 왔노라.


속이지 마라, 웃는 님이여

속이지 마라, 부디 나를 속이지 마라.

그러할 터면, 차라리 나를

검은 칠관(漆棺)에다 집어 넣고서

뾰족한 은정(銀釘)을, 네 손으로 처박아 다오

내나 너를 만날 대까지는

또 만날 때면은, 순실(純實) 하였었노라

입을 맞추려거든, 나의 눈을 가리지 마라.

무엇이든지 주면은, 거저 받을 터이니

그래서, 나로 하여금 의심(疑心) 케 마라

또 간사(奸詐)에 들게 마라.

그리고, 온갖 소리를 치워 다오

듣기 싫다. 회색창(灰色窓) 뒤에서 철벅거리는 목욕(沐浴) 물 소리


내가 입을 다무랴, 입을 다물어?

속고도, 말 못하는 이 세상이다

억울하고도, 말 못하는 이 세상이다

내가 터 닦아 놓은 꽃밭에

어른어른하는 흰 옷은, 누구?

놀래어 도망하는 시악시 사랑아

오이씨 같은 어여쁜 발아

왜, 남의 화단(花壇)을, 무너뜨리고만 가느뇨


뭉뜯어 내버린 꽃송일

주섬주섬 주워담자

임자가 나서거든 던져 주려고

앞산의 큰 영(嶺)을 처음 넘어서

낯모르는 마을로 찾아나 가자

퇴금색(褪金色)의 옷 입은 여왕의 사자(使者)가

번쩍거리는 길가에, 나를 붙들고

동산의 은빛 달이 동그레 돋거든

여왕궁(女王宮)의 뒷문으로 중맞이 오라면

옳지 좋다, 좀이나 좋으랴.

생전(生前)에 처음 좋은 천진(天眞)의 내다

그러나 그러나, 이 어린 손으로

초연(初戀)의 붉은 문을 두드릴 때에

꿈에나 뜻했으랴, 뜻도 아니한

무지한 문지기의 성난 눈초리

그래도 나는, 거침없이 말하겠노라.

이 꽃의 임자는, 우리 님이시다


그러나 꽃을 받을 어여쁜 님아

어데로 갔노? 어데로 갔노?

한 송이 꽃도 못다 이뻐서

들으나, 그는 무덤에 들었다

님의 무덤에 가자마자

그 꽃마저 죽노나! 그 꽃마저 죽노나!

그 꽃마저 죽자마자

날뛰는 이 가슴도 시들시들 가을 바람


아! 이게 꿈이노? 이게 꿈이노!

꿈이면은, 건넛산 어슴푸레한 흙구덩이를

건너다보고서, 실컷 울었건마는

깨어서 보니, 거짓이고 헛되구나, 사랑의 꿈이야.

실연(失戀)의 산기슭 돌아설 때에

가슴이 미어지는 그 울음은

뼈가 녹도록 아팠건마는

모질어라 매정하여라

깨어서는, 흐르는 눈물 일부러 씻고서

허튼 잠꼬대로 돌리고 말고녀.




'[시시(詩時)]한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을 쏘다 - 윤동주  (2) 2015.11.10
가을바람과의 이야기 - 황석우  (0) 2015.11.09
계절의 표정 - 이육사  (0) 2015.11.06
애서취미(愛書趣味) - 오장환  (0) 2015.11.05
생명의 한 토막 - 심훈  (0) 2015.11.04

계절의 표정 - 이육사

[시시(詩時)]한 인생

한여름내 모든 것이 싫었다. 말하자면 속옷을 갈아입고 넥타이를 반듯하게 잡아매고 그 귀에 양복을 말쑥하게 손질해 입는 것이 귀찮을 뿐 아니라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기실 큰 짐이었다. 어쩌면 국이 덤덤하고 장맛이 소태같이 쓰고 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사렸다. 그러자니 혹 전차 안에서나 다방 같은 데서 친한 동무를 만나서도 꼭 않아서는 안 될 인사말밖에 건네지 않았다. 속마음으로는 미안한 줄도 아는 것이지마는 하는 수 없었다. 대관절 사람이 모두 귀찮은 데는 하는 수 없었다. 그래서 금년 여름 동안은 아주 사무적인 이외에 겨우 몇 사람의 동무와 만나면 바둑을 두거나 때로는 빌리어드를 쳐봐도 손들이 많이 오는 데보다는 될 수 있으면 한산한 곳을 찾았다. 그다지 좋아하던 맥주조차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그만이었다. 그다지 자주는 못 만나도 그리울 때면 더러는 찾아가 보고자 한 적도 있었건만 도무지 몸이 듣지 않는다. 대개는 제대로 만들어진 기회에 길손처럼 만나서는 흩어지고 잠자리에 누워서 뉘우쳐 보는 것이어서 이제야 비로소 뉘우친다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여름 동안은 책 한 권 책답게 읽어 보지 못했다. 전과 같으면 하늘이 점점 맑고 높아 오는 때면 아무런 말도 없이 내 가고저운 곳으로 여행이라도 갔으련만 어쩐지 여정(旅情)조차 느껴지지 않고 몸도 마음도 착 까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짐짓 가을에 뺨을 부비며 항분(亢奮)해 보고 울어라도 보고자 한 네 관습이 아직 살아 있었다는 것은 계절을 누구보다도 먼저 느낄 만한 외로움이 나에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밤에 안두(案頭)에 쌓여 있는 시집들 중에서 가을에 읊은 시들을 한두 차례 읽어 봤다. 그 중에서 대표적이고 세상의 문학인들에게 한 번씩은 으레 외지는 것으로 폴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를 비롯하여 르미이 드 구르몽의 <낙엽시>와 <가을의 노래>는 너무도 유명한 것이지마는, 이 불란서의 시단을 잠깐 떠나서 도버해협을 건너면 존 키이츠의 <가을에 붙이는 시>도 좋거니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낙엽시>도 읽으면 어딘가 전설의 도취와 청춘의 범람(氾濫)과 영원에의 사모에서 출발한 이 시인의 심각해 가는 심경을 볼 수 있어 좋으려니와, 다시 대륙으로 건너오면 레나우의 <추사(秋思)>, <만추(晩秋)>는 읊으면 읊을수록 너무나 암담하고 비창(悲愴)해서 눈이 감겨지는 것이나 다시 리리엔 크론의 <가을>같은 것은 인상적이고 눈부신 즉흥을 느낄 수 있는 가을이언마는 철인 니체의 <가을>은 그 애매(愛妹)의 능변으로도 수정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을 찢어 놓는 <가을>이다.

여기서 다시 북구(北歐)로 눈을 돌리면 이곳은 지리적인 까닭일까, 가을이 원체 짧은 까닭일까. 가을을 읊은 시가 다른 지역보다 매우 적은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러시아의 몇 날 안 되는 전원의 가을을 읊은 세르게이 에세닌의 <나는 아끼지 않는다>라든지, <잎 떨러진 단풍>과 <겨울의 예감> 등등은 농민들의 시인으로서 그가 얼마나 망해 가는 농촌의 구각(舊殼)을 애상해 한 데 천부의 재질을 경주했는가 엿볼 수 있어 거듭거듭 외보거니와 여기서 나의 가을 시 순례는 마침내 아시아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그 중에도 시문악의 세계적 고전이며 그 광희가 황황(煌煌)한 3천 년 전의 가을을 읊은 시전(詩傳) <국풍겸가장(國風兼가章)>을 찾아보고는 곧 번역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제 것이나 남의 것을 가릴 것 없이 고전을 번역해 본다는 데는 망령되이 붓을 댈 것이 아니라 신중한 태도를 가질 것은 두말 할 바 아니나, 그것이 막상 문학인 데야 번역 안 될 문학이 어디 있겠느냐는 철없는 생각에 나는 그만 그 일장을 번역해 보고 말았다

 

갈대 우거진 가을 물가에
찬 이슬 맺어 무서리 치도다.
알뜰히 못 잊을 그 님이시고
이 강 한 가 번연히 계시련만.
물따라 찾아 오르려 하면
길은 아득해 멀기도 멀세라.
물따라 찾아 내리자 하면
그 얼굴 그냥 물속에 보여라.

 

이렇게 겨우 3장에서 1장만을 역했을 때다. 홀연히 사지가 뒤틀리는 듯하고 오슬오슬 추우면서 입술이 메마르곤 하였다. 목 안이 갈하고 눈치가 틀리기도 하였지마는 그냥 쓰러진 채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날 아침에 자리에 일어났을 때는 머리가 무거운 것이 지난밤 일이 마치 몇천년 전에도 꿈속에서나 지난 듯 기억에 어렴풋할 뿐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병이란 것을 깨달았다. 다만 가을에 대한 감상만 같으면 심경에나 오지 육체에 올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딴은 때가 늦었다. 웬체 나라는 사람은 황소같이 튼튼하지는 못해도 20년 내에 물에 씻은 듯 감기 고뿔 한 번 시다이 못해 보고 병없이 지내온 터이라 병에 대한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고, 때로 혹 으스스하면 좋은 양방(加味淸酒鷄卵湯 이란 것이 있어 酒黨들은 국적을 물을 것도 없어 대개 짐작을 한다)이 있어 요번에도 그것이면 무려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병이라고 생각한 때는 병이 벌써 뿌리를 단단히 박은 때요, 사실 병이 시작된 때는 첫여름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귀찮고 거북하고 말조차 여러 번 하기 싫었던 모양인데, 미련한 게 인생이고 미련한 덕분에 멋모르고 가을까지 살아 왔다는 것은 아무런 기적이 아니라 고열에 시달리면 매약점에 들어가 해열제를 한 봉 사고 아무 데나 다방에 들어가면 더운 가배와 함께 마시면 등골에 땀이 촉촉하게 젖으며 그날 볼 잡무를 다 볼 수 있는 게 신통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권태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 나는 또 한 가지 묘책을 얻었다는 것은 요놈 쉴 새 없이 나를 습격해 오는 권태를 피하려고 하지않고 권태를 될 수 있는 대로 친절하게 달래어서 향락하려고 했다. 그래서 흉보지 않을 만하면 사무실, 응접실, 살롱 할것없이 귀가 묻힐 만큼 의자에 반은 누운 듯 지내왔다. 담배를 피우며 입술을 조붓하게 오므리고 연기를 천장으로 곱게 불어 올리는 것이었다. 거기에 나는 갠 날의 무지개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와 마주 앉은 벗들에게 무료를 느끼지 않도록 체면을 차리자면 S는 희랍이나 로마의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나도 열이 내린 틈을 타서 서반아의 종교 재판이나 <아라비안 나이트>의 어느 대목을 되풀이하면 그 자리는 가벼운 흥분이 스쳐갔다.

그때는 벌써 처마 끝에 제법 굵은 왕벌들이 날아들었다 간 다시 먼 곳으로 날아가고, 들길가에 보랏빛 들국화가 멀지 못한 서릿발에 다투어 고운 날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 길들을 걷기에 재미를 붙여 보려고도 했다. 혼자 아침 이슬이 아직 마르기도 전에 시외의 나만가는(나는 3,4년 동안 나 혼자 거닐어 보는 숲이었다) 그 숲속으로 갔다. 거기도 들국화는 피어 햇살을 기울게 받아들일 때란 숲속에서만 볼 수 있는 운치와 어울려 마치 보랏빛 연기가 피어 오르는 듯 그윽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곳을 오래 방황할 수는 없다는 것은 으슬으슬 추워지는 까닭이며 따라 내 몸이 앓고 있다는 표적이라 짜증이 나고, 그래서 짚고 간 지팡이로 무자비하게도 꽃송이를 톡톡 치면 퉁겨진 꽃송이들은 낙화처럼 공중을 날아 내 머리와 어깨 위에 지는 것이고, 나는 그만 지쳐서 가쁜 숨을 돌리려고 마친 사람처럼 길을 찾아 나오곤 했다.

길옆 잔디밭에 앉아 숨을 돌리며 생각해 본다. 아무리해도 올 곳은 마음은 아니었다 하지마는 길 가는 놈은 어째서 나를 비웃고 지나는 거냐? 대체 제놈이 무엇인데 내가 보기엔 제가 미친 놈이 아니냐 ? 그꼴에 양복이 무슨 양복이냐? 괘씸한 녀석하고 붙잡아 쌈이라도 한판 하지 않으면 내 화는 풀릴 것 같지 않아서 보면 벌써 그 녀석은 어딘지 가고 없다. 이 분을 어디다 푸느냐? 곰곰이 생각하면 그놈 한 놈뿐만 아니라 인간 놈이란 모두가 괘씸하다. 어째서 나를 비웃고 업신여기는 거냐, 내가 누군줄 알고, 나는 아직 이 세상에 네까짓 놈들 하고 나서 있지 않다. 나는 아직 이 세상에 네까짓 놈들 하고 나서 있지 않다. 또 언제 이 세상에 태어날는지도 모르는 현현(玄玄)한 존재이다. 아니꼬운 놈들이로군 하고 별러댈 때에는 책상에 엎어진 채로 열이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한 때였다.

벗들이 나를 달랬다. 전지 요양을 하란 것이다. 솔깃한 말이라 시골로 떠나기로 결정을 했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갈 곳이 어디냐?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않 수 없었다. 조건을 들면 공기란 건 문제 밖이다. 어느 시골이 공기 나쁜 데야 있을라구. 얼마를 있어도 싫증이 안 날데라야 한다. 그러면 경주로 간다고 해서 떠난 것은 박물관을 한 달쯤 봐도 금관, 옥적(玉笛), 봉덕종(奉德種), 사사자(砂獅子)를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날 까닭은 원체없다. 그뿐인가, 어디 일초 일목(日草一木)과 일토 일석(一土一石)을 버릴 배 없지마는 임해전(臨海殿) 지초(支礎)돌만 남은 옛 궁터에서 가을 석양에 머리칼을 날리며 동남으로 첨성대를 굽어보면 아테네의 원주(圓柱)보다도, 로마의 원형 극장보다도 동양적인 그 주란 화각(朱欄畵閣)에 금대 옥패(金帶玉佩)의 쟁쟁한 옛날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거기서 나의 정신에 끼쳐 온 자랑이 시작되지 않았느냐? 그곳에서 고열로 인해 죽는다고 하자. 그래서 내 자랑 속에서 죽는 것이 무엇이 부끄러운 일이냐? 이렇게 단단히 먹고 간 마음이지만, 내가 나의 아테네를 버리고 서울로 다시 온 이유는 시골 계신 의사 선생이 약이 없다고 서울을 짐짓 가란 것이다. 서울을 오니 할수없어 이곳을 떼를 쓰고 올밖에 없었다.




'[시시(詩時)]한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바람과의 이야기 - 황석우  (0) 2015.11.09
꿈이면은? - 홍사용  (0) 2015.11.07
애서취미(愛書趣味) - 오장환  (0) 2015.11.05
생명의 한 토막 - 심훈  (0) 2015.11.04
다시 - 박용철  (0) 2015.11.03

애서취미(愛書趣味) - 오장환

[시시(詩時)]한 인생

애서취미(愛書趣味)


오장환


상심루(賞心褸)주인께서 애서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문장』에 실어보는 게 어떻냐 하시기에 이 이야기의 초(草)를 잡았습니다. 이 글은 애서취미에 초심이신 분을 위하여 될 수 있는 대로 노트와 연구 같은 것은빼고 평이한 소개에 일화쯤 넣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 필자

흔히 세상에는 서치(書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취나 혹은 도락이 심하여지면 할 수는 없는 일이나 필자는 동경 있을 때 어느 애서가에게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내와 자식은 며칠씩 안 보아도 견디나 책은 잠시라도 곁에서 떼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애서가는 그렇게 독서를 많이 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다점(茶店)에 들어가 앉으면 월간 잡지를 두 페이지도 못 읽고 싫증이 난다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서적을 사는 사람에는 독서가와 애서가의 두 타입이 있다고 하였지만 진실로 이러한 사람을 비블리오마니아(Bibliomania)라고 합니다.

독서도 않는 사람이 책을 사랑하고 책에 대하여서는 치골이 된다는 것이 일견 미친 일과도 같지만 서양에서는 이러한 괴벽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도리어 고대 문헌에 관한 큰 참고가 되는 수도 있고 어느 사적(史的)인 발견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대개 이 애서가가 되기 시작하는 증세는 같은 책에서도 특제를 살려고 하는 데에서 시작되어 세상에서 흔하지 않은 책 한정본, 혹은 초판본, 나중에는 남이 안 가진 책을 가지려고 하고 또한 갖는 데에 쾌감을 느끼는 것이 경지를 넓혀 남의 사본(私本), 원고, 서명본, 필적, 서간, 일기 같은 것을 모으는 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책들을 모으는 데에 갖은 고심과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많은 고로 이 방면에 재미난 일화도 많이 남았습니다만은 왕왕이 경도제대(京都帝大)의 교수요 민족학 연구의 권위인 기요노(淸野) 박사와 같이 자기가 갖고 싶은 책이면 훔치기까지 하는 미안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으레 서적 이야기를 하자면 장정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장정이라면 조선 출판상들은 그저 덮어놓고 화가의 그림이나 한 장 얻어다 표지에 붙여놓고 모모의 장정이라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책의 체재와 활자의 배치라든가 제본 양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취미로만 만들어서야 누구누구의 장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책의 멋은 역시 표지에 있어 좋은 책을 장점함에는 대게 가죽을 쓰게 됩니다. 가죽의 종류는 무슨 가죽으로든지 무방하나 고양이가죽 심지어는 뱀가죽에 이르기까지 쓰고 중세기 구라파에서는 어느 사형수의 등가죽을 벗기어 인피로 장정을 한 책이 지금도 남아있으나 아무래도 고급으로 치기는 양피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도 흰 빛깔을
세우게 됩니다.

자연히 이것저것 장정이 좋은 책에 손을 대이기 시작하면 사람이란 수집의 심리가 동하는 고로 이 길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조선에는 한정판이나 혹은 특제본 같은 것을 별로 만든 적도 없고 또 그러한 책이나 초판본같은 것을 애써 구하는 이들이 드물이나 동경만 하여도 일류 출판사에서 이런 독자에 유의하는 외에 호화본이나 한정본을 전문으로 간행하는 서점이 몇 군데나 있고 애서 취미에 관한 잡지가 다달이 나오며 애서가들이 구락부를 모아 자기네들의 좋아하는 책을 출판하여 회원만이 나눠 갖도록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것은 불란서의 이야깁니다만은 법제원의 멤버에도 의자를 놓고 언어학자로도 큰 권위를 가졌던 고 브레아르 씨는 또한 애서가로도 유명하여 노경에는 그가 몇 해 안으로 산 것만도 5동(棟)이나 되는 집 안에 가득 찼었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1미터 가량 되는 단장을 가지고 다니며 책을 사는데 아무리 못 사도 그 단장 높이만큼은 사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부인은 그 남편이 하도 책 사는 것밖에는 모르는 것을 딱하게 여기어 책을 사지 못하게 하였더니 과연 그것이 원인으로 신경쇠약에 걸리어 심히 열이 생기는 고로 남편이 책을 얼마나 좋아한다는 데에 다시 놀라며 마음대로 하도록 하였더니 또 전과 같이 책을 사들이는데 하루는 어찌 책을 많이 샀던지 마차에서도 태워주지를 않아 노인이 땀을 흠뻑 흘리며 그것을 짊어지고 오다가 넘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기야는 늑막염에 걸리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유애서(亦有愛書)라는 것은 가장 호화로운 실내의 오락입니다. 시간과 금액이 굉장히 많이 드는 고로 조선에서는 앞으로도 애서 취미가 보급되기는 어려우나 개인으로는 필자가 아는 사람으로도 초보 정도의 서치(書痴)로는 몇 명이 있습니다.

흔히 진본, 진본 하지만 진본에는 귀중품으로서의 진본이 있고 호화판으로서의 진본이 있는데 전자가 사화(史話)같은 것이 수위에 있는 대신 재미있는 일로는 후자는 문학 서적이 단연 독점을 할 것입니다. 요 근래에 유명한 한정판으로는 뉴욕에서 발행한 초서(영국 14세기 시인)의 ⌜안나가랑가⌟라는 책인데 처음 예약 가격은 1백 50불이요 한 7,8년 전에는 책이 나온지 10년 가량에 고본 시장에서 시세가 2천 불대에 올랐었다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조선에도 한정판 구락부 같은 것을 만들어 ⌜춘향전⌟이라든가 ⌜용비어천가⌟ 같은 고전 혹은 현대작가들의 시집이나 소설집 같은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매수에 제한이 있사와 일단 이야기는 그칩니다만 기회가 있으면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여보겠습니다.




'[시시(詩時)]한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이면은? - 홍사용  (0) 2015.11.07
계절의 표정 - 이육사  (0) 2015.11.06
생명의 한 토막 - 심훈  (0) 2015.11.04
다시 - 박용철  (0) 2015.11.03
자랑 - 계용묵  (0) 2015.10.27

생명의 한 토막 - 심훈

[시시(詩時)]한 인생
내 생명의 한 토막

심 훈

내가 음악가가 된다면
가느다란 줄이나 뜯는
제금가提琴家는 아니 되려오.
Higth C까지 목청을 끌어 올리는
<카루소> 같은 성악가가 되거나
<솰랴핀>만치나 우렁찬 <베이스>로,
내 설움과 우리의 설움을 버무려
목구멍에 피를 끓이며 영탄詠嘆 노래를 부르고 싶소.
창자 끝이 묻어나오도록 성량껏 내뽑다가
설움이 복받쳐 몸둘 곳이 없으면
몇 만 청중 앞에서 거꾸러져도 좋겠소.

내가 화가가 된다면
<피아드리>처럼 고리삭고
<밀레>처럼 유한悠閑한 그림은 마음이 간지러워서 못 그리겠소.
뭉툭하고 굵다란 선이 살아서
구름 속 용같이 꿈틀거리는
<반 고호>의 필력을 빌어
나와 내 친구의 얼굴을 그리고 싶소.
꺼멓고 싯붉은 원색만 써서
우리의 사는 꼴을 그려 보아도,
대대손손이 전하여 보여주고 싶지는 않소.
그 그림은 한칼로 찢어버리기를 바라는 까닭에......
무엇이 되든지 내 생명의 한 토막을
짧고 굵다랗게 태워 버리고 싶소!




'[시시(詩時)]한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절의 표정 - 이육사  (0) 2015.11.06
애서취미(愛書趣味) - 오장환  (0) 2015.11.05
다시 - 박용철  (0) 2015.11.03
자랑 - 계용묵  (0) 2015.10.27
오늘 문득 - 강경애  (0) 2015.10.26